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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주식

애플

by meriweder 2022.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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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5년 2월 4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 프란시스코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조앤 시블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의 아버지 밑에서 자라 위스콘신 대학의 대학원을 다닐 정도의 수재였는데 시리아에서 온 남자 친구 압둘파타 진달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임신하여 결혼을 겸 심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샌 프란시스코에서 아기를 낳은 다음에 아기의 입양을 결심하게 되고 본인이 아기를 가난한 환경에서 키우는 것보단 좋은 중산층 가정에서 아기가 대학교육까지 받길 원했기 때문에 아기의 입양을 결심하고 폴,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아기를 입양 보냅니다. 나중에 스티브 잡스는 이 사실을 알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되지만 헌신적인 양부모의 지원 아래 바르게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아이가 커서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됩니다. 잡스의 말을 인용하면 저의 양부모님께서는 1.000% 제 부모님입니다라고 단호히 말했고 친어머니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습니다. 그의 진짜 이름은 스티븐 폴 스티브 잡스(Steven Paul Steve Jobs 1955. 2. 24~2011. 10. 5)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양아버지는 기계공이었고 점잖고 사려 깊은 분이셨고 양어머니는 아르메니아 이민자의 딸로 상냥한 성품과 여성스러운 분이셨지만 아기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스티브 잡스는 이런 양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자라났고  스티브 잡스가 이른 10대 때 입양 사실을 밝혔고 큰 사랑으로 스티브 잡스를 보듬어 주셨습니다.

 

청소년 시절의 스티브 잡스

잡스의 유녀 시절은 항상 호기심이 많고 공상을 자주 하며 공부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잡스의 4학년 담임 이머진 힐 선생님께서 잡스를 위해  사탕, 돈, 로 자주 심부름과 학업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셨고 나중에는 힐 선생님을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려 했고  잡스가 4학년 말에는 수학 능력 평가를 보았고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수학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한 학년만 월반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또한 양아버지의 집 차고에서 수많은 기계공구를 만지면서 공학에 눈을 뜨게 되는데 양아버지 폴 잡스는 중고차 세일즈맨과 중고차를 사서 수리한 후 재판매하는 일을 했는데 이것은 잡스에게 기계에 대한 기본지식과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심어주게 되었고 보이지 않는 뒷부분도 앞면과 같이 신경 써야 한다는 중요한 철학을 가르쳐 주고 나중에 애플을 설립 후 제품을 만들 때 이런 기본지식이 제품 철학의 바탕이 됩니다. 또한 잡스는 기계를 만지는 아버지 폴 잡스 보다 폴 바스가 차를 고칠 중고차 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흥정하는 모습에 더 흥미를 가집니다. 학교생활에서도 적응을 할 무렵 잡스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래리 랭의 차고를 방문했는데 랭은 잡스에게 히스키트 라는 아마추어 전자공학 키트를 보여 주었고 잡스는 히스키트로 여러 작업을 시도하면서 전자공학의 작동원리를 익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랭은 HP탐구자 클럽에 잡스를 초대해 HP사에 방문해 거대한 데스크 탑 컴퓨터인 9100A 보게 됩니다. 또한 잡스는 고등학교 시절 때 HP공장 조립라인에서 단순 조립을 하는 일과 신문 배달, 전자기기 상점에서 재고품 관리하는 일을 했고 HP엔지니어들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게 되었고 과학분야 책은 물론이고 철학, 종교, 소설 특히 입문 고전,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비롯해 모비딕 외 딜런 토머스 시까지 다방면의 책과 음악을 즐겼습니다. 잡스가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서 중, 고교를 다니던 12세 때에는 전화번호부를 보고 HP의 당시 CEO 빌 휴렛이게 전화를 걸어 주파주 계수기를 만들어 보고 싶으니 부품을 보내 주라고 했고 실제 부품을 받아 주파수 계수기를 만들었습니다. 잡스가 9학년 때 일생일대의 친구이자 동료를 만나게 되는데 12학년 선배들과 많은 교류를 하면서 전자공학과 수학, 과학을 배우고 공부하고 실리콘 밸리에 전설 존 맥콜럼에게 전자공학 수업도 듣게 되고 맥콜럼의 총애를 받고 있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보다 5살이 많았고 워즈니악과 같은 동네에 사는 빌 페르난데스가 위즈니악에게 잡스를 소개해 주고 1971년 드디어 애플의 탄생을 알리는 블루박스가 탄생하게 됩니다. 후에 잡스는 그의 영원한 동료이자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HP사에 임시 채용 기회를 얻었습니다. 잡스가 청소년 시절에 살았던 집들은 대부분 부동산 개발업자 조셉 아이클러가 지은 집이었는데 조셉은 깨끗하고 심플하면서도 저렴한 집들을 지었고 이것은 잡스의 청소년 시절의 애플 컴퓨터 디자인 대한 영감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대학시절 

1972년만 17세 때 리드 칼리지를 입학한 잡스는 1학기만 수강한 후 학교를 휴학하는데 잡스는 부모님께 비싼 학비의 짐을 드리기 싫었습니다. 잡스는 대학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부모님께 말하지만 부모님께서 17년간 모아둔 학자금펀드로 오래 건주 포틀랜드 리드 칼리지 철학과로 입학하게 되고 비싼 학비와 본인이 듣기를 원하는 과목만 들러야 하는데 비싼 다른 교양과목까지 들어야 할 봐에는 학교를 중퇴하고 기숙사 주임에게 잡스가 퇴학 후에도 계속 학교 기숙사에 있으며 본인이 좋아하고 필요한 과목만 수강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잡스는 캘리그래피라는 수업을 청강하게 되고 글자체의 심미적 의미에 대해 빠져 듭니다. 이로써 잡스는 애플 창업 후 투루 타입 폰트를 애플 컴퓨터에 적용하여 아름다운 글자체를 반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973년 리드 칼리지를 나온 후에 오리건주 올인원팜(All in One Farm)이라는 히피들의 공동체 사과 농장에 지내면서 잡스의 정신적 지주인 일본 불교 승려인 오토카와 고분 치노를 만나게 되어 불교에 입문한다. 나중에 잡스가 애플을 창업해서 운영하면서 힘들 때 출가해 승려가 되려고 찾아 가지만 치노 승려의 반대로 다시 하게 되었고 2002년 치노 승려가 사망할 때까지 정신적 지주로 항상 그를 찾아갔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애플리란 회사명도 사과농장에서 잡스의 정신적 지주를 만 났기 때문에 또한 단순한 디자인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1974년 2월 캘리포니아 로스 앤 젤리스의 부모님 댁으로 온 잡스는 직장을 들어가게 되는데 비디오 게임 회사 아타리로 잡스는 아타리의 공동 창업자 앨 알콘의 눈에 들러 회사에 입사하게 되고  심지어 아타리의 창업자 놀런 부슈널까지 잡스를 신뢰하게 되어 잡스가 야간 근무를 할 수 있개 도와주었습니다. 잡스는 아타리에서 여러 비디오 게임의 개선을 도왔고 게임이 쉽고 단순한 아타리 게임에 큰 영향을 받았다. 잡스가 7개월간의 인도 여행을 하고 돌아와 다시 아타리에 일하게 되는데 아타리의 창업자 부슈널이 벽돌깨기(breakout)를 보드판(PCB)에 저항을 50개 미만으로 최소한 적게 사용해 만들러 줄 것을 제안했고 잡스는 그의 동반자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보수에 반을 주는 조건으로 만들러 줄 것을 부탁했고 워즈니악은 45개 저항으로 4일 만에 설계했지만 잡스는 웨즈니악에게 350달러만 주고 잡스는 인센티브까지 해서 5천 달러를 아타리 회사로부터 받습니다. 아타리 퇴사 후에  자신의 집 차고에서 1974년에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 1을 만들었습니다. 애플 1은 모니터가 없고 디자인도 투박했지만 의외로 높은 매출을 보였습니다.

 

애플의 탄생과 스티브 잡스의 죽음 

마침내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애플 2를 통해 완벽한 단일 PC를 만들었다. 1980년에는 주식을 공개했고 1984년에는 딸 이름 리사를 넣어 1984년에 애플 리사를 만들었고 다자인이 아름다운 맥킨토시 시리즈까지 두 번의 실패로 그가 고용한 CEO 존 스칼리에 의해 1985년에 애플을 쫓겨나게 되고 넥스트라는 컴퓨터 회사를 창업해 세계 최초의 객체 지향 운영 체제인 넥스트 스텝을 개발하였고 1986년에 스타워즈의 제작자겸 감독인 조지 루카스의 그래픽 회사를 인수하여 픽사라고 이름을 바꾸고 10년가 6천만 달러를 투자해 할리우드 최고의 애니메이션 화사로 키워냈고 여러 차례 오스카 상과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로 큰 성공을 거둔 후 디즈니에 74억 달러에 매각, 합병되었고 1997년에 비로써 그가 설립한 넥스트는 애플사에 합류되고 만성 매출 부진으로 10억 달러의 적자의 애플사를 단 1년 만에 4억 달러 흑자로 돌려놓았습니다. 2003년 지나친 단식과 과일과 채소 디톡스 식습관으로 췌장암에 걸리게 되고 2004년 스탠퍼드 의과 병원에서 변형 휘플 수술(췌장 일부를 제거하고 단백질 섭취 요망)을 받았습니다. 2009년 6월, 2011년 1월 잡스의 두 번의 건강이상설로 애플 주식은 두 번이나 ㅡ 6% 때로 극락 했고 2011년 3월에는  아이패드 2를 발표하며 건강이상설을 잠재웠지만 의사의 권고로 단백질 섭취를 많이 해야 했지만 잡스는 십 대 때부터 해온 식습관이었던 비건 스타일 야채, 과일, 디톡스 단식을 계속 유지하였고  2011년 8월 24일 췌장암이 다시 재발돼 CEO 자리에서 사임하고 새 CEO로 COO(최고 운영 책임자) 팀 쿡으로 후임을 맡았고 건강상태가 더 악화되어 2011년 10월 5일 56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마지막 잡스의 디자인은 아이폰5였습니다. 

결론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의 사망 직후 14달러인 애플 주가는 계속 상승해 52주 최고가 177.57달러(2021년 12월 10일)이고 최저는 37.06달러(2019년 1월 4일)입니다. 현재 137.44(2022년 6월 28일)입니다. 대부분의 예상은 큰 변수가 없는 한 계속 떨러 질 거라 보고 있습니다. 세계의 경기 침체로 스마트폰 수요는 감소할 거라 하는데 아직 미지수고 2019년에 인텔의 모뎀 사업을 이수해 자체 반도체를 개발하려 하는데 계속 실패로 끝나는 바람에 퀄컴 XC60모뎀을 그대로 쓰기로 하고 2023년 새 아이폰까지 퀄컴애 모뎀을 그대로 쓰기로 잠정적 확인이라는데 하지만 여전히 자체 반도체와 5G 칩 개발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빅 태그 대장주인 만큼 계속 가지고 가야 할 주식은 확실한데 지금 가지고 2025년 자율주행차와 택시 서비스가 나오면 200달러 이상은 문안하지 않을까 하는데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들고 갈지 아니면 우선 수익 실현하고 현금 들고 가실 분은 관망하시고 저같이 이것 저것 신경 쓰지 않는 스타일은 들고 가시면서 미국장에서 8월에 나올 FRB제롬 포웰 의장의 발표를 기다리고 그전에 JP모건 앤 체이스 제이미 다이슨의 7월 17일 17% 하락장을 기대하시고 저 같은 경우는 2계좌로 사서 비교하려 합니다. 다들 성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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