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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더드 오일의 시작
지금의 국제유가는 상승의 상승을 거듭하면서 인플레이션과 함께 에너지주의 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세계 최대 정유회사인 엑슨모빌은 꼭 알아야 하는 인물이 있는데 미국의 석유 왕인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 Lockefeller 1839~1937)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006년에는 미국 포브스에서 선정한 가장 부유한 역대 1위 순위로 선정되었고 자산가치는 현재 빌 게이츠의 3배 정도라 하니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존 디 록펠러는 1893녀 뉴욕 북부 리츠 포트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월리암 록펠러는 나무꾼으로 일하다 검증되지 않는 만병통치약을 전국을 팔러 다니면서 소금, 목재, 말 등을 팔고 다니는 장삿군이었습니다. 하지만 월리암 록펠러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심지어 성장한 자녀들에게 집세와 사업자금 이자까지 받아가면서 세상은 쉽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존 록펠러 어머니는 청교도적 정직, 성실과 근면을 자녀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자녀들이 올바르게 성 잘할 수 있게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어렸을 때 존은 칠면조를 키워 용돈을 벌었고 감자와 캔디도 팔았습니다. 또한 이렇게 번 돈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이자를 받기도 했습니다. 존 록펠러는 아버지, 월리암 록펠러의 장사 수완을 물려받아 뛰어난 사업 자질을 발휘합니다. 존 록펠러는 가난한 가정환경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습니다. 16세 때 록펠러는 휴이트 엔 터틀이라는 곡물 위탁판매 상점에서 경리 보조로 열심히 일했지만 본인이 원했던 임금 협상의 불발로 상점을 그만두게 됩니다. 20살의 존 록펠러는 동료인 모리스 클라크와 함께 클라크 앤 록펠러라는 회사를 차려 생필품과 농산물을 팔아 막대한 돈을 벌게 됩니다.
일생일대의 기회
2년 후인 1861년 남북전쟁이 일어났고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북군에 물품을 조달하면서 엄청난 부를 이룹니다. 그 당시 미국에선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 유전이 발견되면서 텍사스, 캘리포니아주 외 여러 주에서 석유 유전 붐이 일어납니다. 1864년 24세가 된 록펠러는 정유회사 설립하면서 식료품 사업에서 석유정제 회사로 전환하게 됩니다. 존 록펠러는 당시 청교도 가문의 유복한 연상의 여성인 로라 스펠만(1839~1915)이라는 초등학교 선생과 결혼하게 됩니다. 결혼해서 노라가 1915년에 죽기 전까지 서로 사랑했으며 다섯 자녀를 낳고 대체로 행복한 가정생활로 살았습니다. 존 록펠러는 남들이 유전을 찾아 유전사업을 할 때 부가가치가 더 큰 정제산업의 가능성을 보게 되고 26세에 록펠러 앤 엔드류스라는 석유 정유회사를 설립해 석유정제사업에 집중합니다. 이로써 존 록펠러는 사무엘 에드류스, 헨리 모리슨 플레글러와 함께 규모가 엄청난 정유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바로 지금 말씀드린 3인 설립회사가 스탠더드 오일(Stand Oil)의 전신이 됩니다.
스탠더드 오일의 탄생
회사를 운영하면서 여러 다른 정유회사의 질 나쁜 등유로 밤에 전등을 사용했던 시기 다른 정유회사의 질 나쁜 등유로 많은 사람이 다치게 되고 이것은 보완하고 규격화하기 위해 마침내 31세(1870년)에 자본금 100만 달러로 스탠더드 오일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업체들의 난립으로 석유 가격의 극심한 급등락 인한 가격 하락으로 업체 간 협력과 인수합병으로 시장을 정리하는 것이 옮다는 것을 그의 신념이고 의지였습니다. 불황기에 철도와 석유 사업자 간의 트러스트 구성해 운송료와 마진을 조정했고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에 들어오길 거부하는 업체는 미국 오일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전략에 통해 미국 석유시장의 95%를 장악했습니다. 이로 인해 존 록펠러는 그의 사업에서 많은 적을 많들기 시작했습니다. 1883년 43세에 그는 미국 최대 억만장자 반열에 오릅니다. 석유산업으로 번 막대한 수입은 광산, 살림, 철도, 은행에 투자해 더 많은 부를 축척하게 됩니다. 에디슨의 전구 개발로 더 이상의 등유가 필요 없게 되었지만 휘발유가 필요한 자동차 시대가 열리면서 석유는 기하급수적으로 수요가 늘어나게 됐고 1890년 53세에는 전 세계 석유량의 80%를 공급한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사회에 공헌한 록펠러재단
하지만 존 록펠러는 알로피셔라는 탈모증과 피부암으로 1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병원에서 살다가 어느 날 병원 벽에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라는 글을 읽고 그동안 돈은 많이 벌었지만 남을 위해 뜻있게 쓰질 못했다는 생각으로 지내면서 알게 된 아픈 가난한 아이 엄마에게 병원비를 전부 지불해 주고 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는 아이 엄마와 아이를 보면서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됩니다. 존 록펠러가 불치병을 이겨내면서 청교도의 십일조의 법을 지키고 그가 55세부터는 도서관, 고아원에 선행에 힘쓰며 자선사업을 하게 됩니다. 어느덧 미 정부는 석유산업을 독점권으로 통제하는 스탠더드 오일에 1899년 존 록펠러가 60세가 된 해에 연방 반 트러스트 법 위반 혐의를 인정받아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는 계약 해지되며 끝내는 스탠더드 오일 해체라는 미국 대법원에 명으로 그의 나이 72세가 되던 해에 스탠더드 오일은 해체됩니다. 독점금지법으로 회사가 34개로 분리되면서 1913년인 74세에는 주식 증가로 10억 달러의 재산을 갖게 됩니다.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그가 한 일을 록펠러 재단을 설립해 시카고대학을 설립하였고 병원, 의학연구소, 교회, 학교, 박물관을 설립하고 의학연구소에서는 각종 전염병과 폐렴, 소아마비, 매독 등에 치료할 백신을 개발해 인류의 번영에 공헌했고 재단의 지원으로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존 디 록펠러는 1937년 플로리다주 본인의 저택에서 97세로 세상을 떠납습니다. 그가 이룬 업적과 성과는 기독교 신앙에서 나왔고 그가 억만장자로 죽지 않고 자선사업가로 가진 돈을 아름답게 사회에 기부와 환원으로 미국의 부자들에게 삶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평생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고 그가 선택한 식료품 사업은 안정적이었지만 불안한 석유사업 그것도 신생 정유사업에 뛰어든 그의 벤처기업가 정신은 많은 젊은 벤처기업가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1999년 엑슨과 모빌은 합병했으며 지금의 엑슨모빌은 세계 최대 정유회사가 되었습니다. 존 디 록펠러가 기업을 세우고 키웠다면 지금의 엑슨모빌은 그가 바랬던 완전체이지 않을까 합니다. 존 디 록펠러의 인류애는 그의 사후 아직도 우리 가슴속에 살아 쉼 쉬고 있습니다. 엑슨모빌의 주가는 현재 82달러지만 END코로나인 지금, 여행의 규제가 풀리고 국제유가는 계속 오를 거라 본다면 또한 이 회사의 탄탄한 석유정제 기술력과 더불어 투자자들이 멀리 보고 투자한다면 더불어 5%~6% 배당도 받을 수 있는 엑슨모빌, 2022년에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배당금을 처음으로 받을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52주 최고치인 100달러 진입도 무난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렵고 불안한 장이지만 그래도 변동폭이 한국 코스피보다 적은 미국 시장이 안정적으로 자산을 관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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