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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 월드와이드 홀딩스
meriweder
2022. 6. 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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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호텔 하면 떠오르느것 '에어컨과 TV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호텔'
전 세계 2800개 호텔을 세운 글로벌 호텔 브랜드
힐튼 제국의 서막
뉴 멕시코주 센 안토니오에 노르웨이계 이민자 거스 힐튼(Augustus Halvorsen hilton)과 독일계 미국인 메리 로퍼스 와일러(Mary Laufers Weiler) 부부가 8명의 자녀들과 살고 있었습니다. 8명의 자녀 중에 1887년 12월 25일 둘째로 태어난 콘래드 니콜슨 힐튼(Conrad Nicholson Hilton)은 일명 코니라고 불린 이 아이가 세계적인 호텔 힐튼을 창업한 인물입니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성공한 기업가는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시작해서 부를 일구는 반면 코니 힐튼은 어려서부터 부유했던 부모님 덕분에 유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코니의 아버지, 거스 힐튼은 가끔씩 사냥을 해서 모피를 마련하거나 사냥꾼들에게 모피를 사들여서 장터에 나가 팔거나 물물 교환하여 여러 상품을 받아다 본인이 운영하는 종합 상점에서 판매하여 수익을 남겼습니다. 거스 힐튼은 항상 8명의 아이들에게 상점에서 일을 시켰는데 작은 일이라도 항상 일한 만큼의 대가를 정당하게 주었습니다. 둘째 코니는 아버지 가게 일은 도우며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성장하게 됩니다. 1903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15살이 된 코니는 우연히 어머니의 침대 옆 서랍에서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아시는 헬렌 켈러의 `낙천주의`라는 책이었습니다. 코니는 헬렌 켈러의 책을 읽고 당시 본인보다 8살 많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이 여성이 세상을 비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아 코니는 헬렌 켈러를 인생의 롤 모델로 삼게 됩니다. 1905년 1월 학교를 자태 하고 사업을 위해 아버지 거스 힐튼에게 1년간의 사업 노하우를 배운 후 코니는 아버지의 허락하에 아버지께 배운 사업 노하우를 통해 넓은 세상에 나가 돈을 벌어볼 생각으로 직접 마차를 몰아 2주간의 행상 여행을 했습니다. 그런 후 뜻한 바가 있어 다시 학교로 돌아와 공부에 전염하였고 아버지 거스 힐튼은 운영하던 탄광도 웃돈으로 팔고 운영이 잘된 종합 상점은 그대로 두고 캘리포니아 부촌인 롱비치로 가족을 이끌고 이사 오게 됩니다. 코니 힐튼 역시 학업에 열중하며 경영학을 전공해서 고양 있는 엘리트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미국 대공황으로 힐튼가의 위기
하지만 1907년 10월 니커 버커 신탁은행을 시작으로 미국의 금융 대공황 찾아왔습니다. 이로 인해 코니의 아버지 거스가 운영하는 뉴멕시코의 종합 상점은 상품의 재고가 가득 쌓이기 시작합니다. 상점의 빚더미로 바뀐 재고 상품들 때문에 캘리포니아를 떠나 고향인 뉴 멕시코로 온 가족이 돌아오게 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거스 힐튼의 집은 철도 옆 대저택에 1층 종합 상점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힐튼호텔의 시작, 정치 입문 그리고 은행업
거스 힐튼은 대공황을 맞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 중에 바로 옆 철도역에 많은 상인들, 광부들, 일을 찾는 사람들, 기차역 관련 종사자들에게 1층 상점에 많이 쌓여있는 재고 상품들을 이용해 호텔사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아이들은 짐을 나르는 벨보이, 아내는 음식 솜씨를 발휘에 좋은 주방장 본인 거스 힐튼은 총지배인 되어 1층 상점을 호텔 간판으로 바꾸고 여행객을 하루 식사를 포함한 하루 숙박비는 2달러 50센트 받고 사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힐튼가의 호텔사업의 시작이었습니다. 1912년 1월 뉴멕시코주가 공식적으로 미국의 편입되면서 코니는 본인 사업을 하고 싶었는데 지인의 제안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되면서 뉴멕시코주 최연소 공화당 주 의원이 되고 주를 위해 여러 병폐를 바꾸어 보려 노력했으나 부패와 뒷거래로 얼룩진 의회의 의원직을 포기하고 거기 서배운 바탕으로 은행가가 되기를 결심하고 뉴 멕시코 주은행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현금 2900달러와 본인의 호텔 법인 주식 3만 달러로 1913년 9월 센 안토니오 뉴 멕시코 주은행을 설립합니다. 하지만 주주총회에서 전문 은행가인 어렐에게 은행장 자리가 넘어가고 코리는 무보수 지배인으로 지내다 은행장의 방만한 경영으로 파산할 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이때 코리의 아버지 거스 힐튼이 여러 은행의 신탁 예치금을 지원해 주면서 코리 힐튼은 뉴멕시코 은행의 전무가 되었고 아버지의 지원은 코리에게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뉴멕시코 주 은행은 잘 운영됐고 세계대전의 소용도리 속으로 코니 힐튼은 입대하게 되고 미국 시민으로서 군 입대해 미국을 위해 싸우게 됩니다.
거스 힐튼의 부고와 텍사스의 은인들
그러던 중 1919년 1월 14일에 아버지 거스 힐튼의 갑작스러운 자동차 빙판사고로 뜻밖에 사망 소식을 어머니로부터 들려왔습니다. 결국 1919년 2월 11일 군에서 전역하여 고향인 뉴 멕시코로 온 코니는 아버지의 사업을 정리한 후 아버지 친구인 미국 엘버커키에 사는 에멧 보기를 찾아가게 됩니다. 이미 그곳에는 여러 은행이 자리 잡고 있었고 본인의 은행 설립은 물 건너갔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 친구 에멧커키의 건강 위독으로 그의 집을 방문 후 아버지 친구 에멧 보기는 죽기 전 코니에게 텍사스주 여러 곳에서 석유 유전이 발견되니 은행업도 승산이 있으니 희망의 땅 텍사스주로 거처를 옮겨줄 것과 자신의 사망보험금 일부를 코니가 텍사스에서 은행업을 창업할 수 있게 지원해 주기로 하고 심지어 에멧 보기의 은행가 친구 엠 엘 드라운라는 친구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로써 텍사스 인근의 인수할 은행을 둘러본 후 시스코에 자리한 7만 5천 달러의 시스코 은행을 매입하려고 찾아갔지만 갑작스럽게 가격을 8만 불로 올려 인수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지만 시스코 은행 인수전으로 잠시 머물고 있는 시스코 역 모블리 호텔에 많은 투수객 들을 본 후 호텔 성장의 잠재성을 확인하고 때마침 모블리 호텔 회장이 4만 달러에 모블리 호텔을 매각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코니 힐든은 즉시 호텔을 3만 5천 달러에서 매입하느것을 모블리 호텔 회장과 합의 후 우선 본인이 가지고 있는 5천 불을 계약금으로 지불하고 후에 잔금은 에멧 보기의 은행가 친구 엠 엘 드라운에게 빌린 후 모블리 호텔을 인수 후 호텔 로비에 있는 여러 장식과 소파들과 티 테이블을 정리한 후 그 자리에 여러 개의 방을 만들고 투숙객들을 받으면서 힐튼호텔의 역사의 서막이 시작됩니다. 코니 힐튼은 아버지 거스 힐튼에게 배운 사업 수환으로 모블리 호텔을 잘 운영해서 2년 만에 모든 빚을 갚고 1925년 드디어 텍사스주 달라스에 힐튼가의 이름이 들어간 136만 달러의 달라스 힐튼호텔을 세우게 됩니다. 이로부터 코니 힐튼의 호텔사업은 여러 호텔을 건축하고 인수하며 승승장구합니다.
미국의 두 번째 경제 대공황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 미국의 두 번째 경제대공황이 옵니다. 불행히도 호텔사업도 큰 타격을 받았고 힐튼 호텔도 예외일순 없었고 힐튼호텔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호텔도 빼앗기고 다른 호텔에 호텔 건물이 매도당하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찰나에 평소에 평판이 좋은 코니 힐트에게 뜻밖에 기회가 친구의 석 유체 굴 권유로 찾아옵니다. 바로 텍사스 석 유체 굴 사업이며 이로써 막대한 돈을 벌어 빼앗겼던 여러 호텔을 다시 찾고 다른 호텔을 인수와 합병으로 지금의 힐튼 제국을 건설됩니다. 콘레드 힐튼의 이야기는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이야기도 이니고 삶의 역경이 올 때마다 아버지, 거스 힐튼의 지혜를 그대로 실천해 현대인과 반대로 급하지 않고 지혜롭게 생각과 사색으로 힐튼 제국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금의 여러 힐튼의 자녀들의 탈선과 방황은 많은 것을 사실이지만 그래도 3대를 걸쳐 내려온 거스 힐튼, 콘레드 힐튼 그리고 배런 힐튼까지 유전자적으로 진취적이고 매사에 긍정적이고 신중하게 호텔사업을 발전시키는 모습을 우리는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힐튼 제국
힐튼 월드와이드 홀딩스은 END코로나 여파로 해외여행객의 증가와 여객기 여행객 수요로 만약 매수했다면 계속 지켜봐야 할 종목이지 않을까 한다. 참고로 다가오는 스테이그플레이션을 대비해 어차피 들고갈거라면 현금보유와 함께 6월 16일 대한민국 아침에 미국연방준비위원회(FOMC) 회의 결과를 눈여겨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코로나전과 후는 밖을 나가고 싶어하는 여행객들의 집 안에서 집 밖으로의 탈출이니 그래도 코로나 펜데믹이후 미국인들은 자유로운여행을 즐기려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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